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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 쓴 소녀들

킹스텔라 2010. 9. 2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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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 쓴 소녀들

  선수라고 해야 고작 16개 팀에 345명. 그러나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뽑은 여고생 21명은 어제 세계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꺾고 FIFA 대회 첫 우승이란 한국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그들이 장하고 대견하다.

  우리 선수들은 역전을 허용해도 자신감과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120분 연장 혈전으로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불굴의 투지로 승리를 따냈다. 8골 최다득점으로 골든볼과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한 여민지가 주춤하자 이정은의 선제 중거리 슛과 김아름의 동점 프리킥이 불을 뿜었다. 2- 3으로 끌려가던 후반에는 교체 투입된 이소담이 멋진 발리 슛을 터뜨려 온 국민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세계 정상에 오르기에는 객관적 전력이 뒤진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축구는 실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이지리아 스페인 등 강팀을 만나 먼저 실점해도 좌절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승부근성으로 승부를 뒤집었고 일본과의 승부차기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

  최덕주 감독의 리더십과 용병술도 돋보였다. 그는 사춘기 소녀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강요에 의해 억지로 뛰는 축구가 아닌 '즐기는 축구'로 선수들의 기본기를 다지고 창의적 플레이를 터득하게 했다. 결정적 실수를 해도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 덕장의 지도 아래 선수들은 한마음이 됐고, 실전에서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 여자축구는 지난달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3위를 차지했다. 이어 17세 이하 대회에서 정상에 우뚝 선 것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열악한 현실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2002년부터 대한축구협회가 여자축구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투자를 했지만, 초ㆍ중ㆍ고와 대학을 합쳐 모두 65개 팀에 불과할 정도로 바탕이 빈약하다. 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우승이 결코 우연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출처 : 한국일보-사설 (20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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