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세상읽기

“인권위는 이제 고사 단계로 전락하고 있다”

킹스텔라 2010. 11. 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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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 유남영, 문경란 두 상임위원이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 운영 방식에 반발해 어제 사퇴의사를 밝혔다. 2001년 인권위 설립 후 임기 3년의 상임위원 2명이 중도 사퇴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중 유 위원은 전 정권에서 대통령 추천, 문 위원은 한나라당 추천으로 임명된 인사다. 이들의 사퇴는 최근 상임위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인권위 운영규칙개정안이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게 직접적 계기가 된 듯하다. 인권위가 독립적 국가기관이 아니라 권력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하고 위원 구성이 보수화하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 제청건이나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건 등 인권침해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례가 속출하는데도 인권위는 ‘침묵’을 지키기 일쑤였다. 독립된 인권전담 국가기관이라는 위상을 망각하고 이명박 정부와 코드를 맞춘 행보를 한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런 사정은 사퇴 의사를 밝힌 유 위원이 “인권위가 주어진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문 위원이 “현 위원장 부임 이후 인권위는 파행과 왜곡을 거쳐 이제 고사(枯死) 단계로 전락하는 듯하다”고 지적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러다 보니 인권위가 ‘봉숭아학당’ ‘식물위원회’ ‘좀비(살아있는 시체) 기구’라는 등 비아냥 섞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임기가 끝난 위원장과 위원 자리에 친정권 인사를 앉히면서 끊임없이 위원회의 무력화를 시도해온 결과다. 심지어 “인권위보다 사법부가 인권 전문가”라며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하는 위원도 있을 정도다. 반면 오랫동안 인권위 위상 강화를 위해 일해온 인권활동가들은 하나 둘 떠나고 있다. 인권위 권위는 정부기관마저 노골적으로 인권위 권고를 무시할 정도로 추락했다.

  인권위는 설립 목적이 인권 보호와 향상인 만큼 사회 현안에 대해 정치적 이념적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두 위원의 사퇴는 위기에 처한 인권위에 대한 마지막 경고로 볼 수 있다. 현 위원장은 사상 초유의 인권위 파행사태에 책임지고 사퇴해야 마땅하다. 이대로 인권위의 무력화 시도가 계속된다면 이명박 정권은 나라를 인권 후진국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될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사설 (20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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