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세상읽기

[이 사람]김수영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킹스텔라 2011. 3. 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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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김수영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ㆍ“머리로 꿔 가늠할 수 없는 꿈, 발로 뛰어 가능케 하는 힘”
ㆍDream83를 차곡차곡 채워가는 ‘꿈 종결자’ 김수영

김수영씨(30)는 ‘꿈 전도사’라 할 만한다. 방황과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여수 시골 촌뜨기 소녀가 골드만삭스, 로열더치셸 같은 내로라는 세계적인 기업 이력을 갖게 된 것도 꿈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김수영.사진|서성일 기자


“꿈은 방황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것이 그녀가 세상 사람들에 던지는 꿈에 대한 확신에 찬 한마디다. 

김씨는 1999년 KBS1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교생으로는 처음으로 골든벨을 울려 ‘골든벨 소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스타가 됐다. 2010년 출간한 자전 에세이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는 24쇄를 돌파했으니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어느 새 ‘서른 잔치’를 준비 중이다. 다니고 있던 영국계 석유회사 로열더치셸에 18개월 휴직계를 던지고 지난 19일 귀국했다. 

“제 꿈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겁니다. 세상을 돌며 그들과 만나고 인터뷰를 하면서 꿈의 증거를 만들 생각입니다. 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뤄 행복한 삶을 산다면 저의 궁극적인 꿈도 이뤄지는 셈이니까요.”


최근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5억원(1억원씩 5명)의 거금을 지원하는 ‘조니워커 킵워킹펀드’ 공모전에 도전장을 냈고, 28일 최종 당선자로 선정돼 1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를 기금으로 오는 6월부터 1년간 영국 런던을 출발해 한국까지 육로 여행을 하며 사람들을 만날 작정이다. 더치 셸에 휴직계를 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도 이 때문이다. 

김씨가 꿈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길지 않으면서도, 굴곡이 많았던 인생에 꿈이 터닝포인트가 됐기 때문이다. 

책 출간 후 수천명으로부터 ‘제 꿈을 모르겠다. 돈·학벌·환경 때문에 이룰 수 없다’는 이메일을 받고 답답함을 누를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하나의 해답이 될 까 싶어 또 다시 길 위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1년간 여행을 하면서 그들에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만가지 꿈을 보여주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17대1, 여수 ‘촌년’ 주먹잔혹사


김씨는 어릴때 어른들이 대화 중에 ‘개 꿈’이라고 말하는 데서 꿈이란 낱말을 처음 들었다. 그는 처음에 가난을 불행이라 여겼다. 그 가난이 자신을 한때 사고 뭉치로 만들었다. 

하루 2시간 버스타고 여수까지 통학하던 초등학생 수영은, 어수선한 시골버스 속 바지락 망태를 든 시골 할아버지·할머니와 뒤엉켜 상거지꼴이 돼서야 등교하곤 했다. 추레한 몰골은 그에게 ‘왕따’의 멍에를 씌웠고, 여중생이 돼서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 뭉치가 돼 있었다. 

“두번 가출했는 데, 경찰에 잡혀 실패했어요. 무용담처럼 또 다시 가출했죠. 3개월 정도 됐을까요, 우상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 홈’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왔죠.”

하지만 발랄한 10대 반란의 뒤끝은 길었다. ‘꼬나본다’는 이유로 17대1의 우격다짐도 불사하던 그녀는 끝내 중학교를 그만뒀다. 그런 후 시쳇말로 1년을 꿇어 여수정보과학고에 들어갔다. 가출해 있을 때 수많은 촛불과 함께 불면의 밤을 지샜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총에 맞아 죽은 아들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팔레스타인 아버지의 모습을 신문을 통해 보고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치기 어린 어리광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다. 


문제아 김수영은 드디어 책상머리에 앉았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비아냥 섞인 웃음을 자아냈다. 한번 해보자고 공부를 시작했는 데 고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연세대 영문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었다. 다행히 “전국적으로 학교 망신시킬 일 있냐”는 비난 속에도 <도전! 골든벨>을 유치한 교장 선생님 덕에, 우승 상금과 그 외 장학금으로 세상에 나갈 밑천을 마련할 수 있었다.
추억된 150장의 퇴짜 이력서 

미국의 골드만삭스, 영국의 로열더치셸로 이어지는 그녀의 글로벌 기업 이력은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 아니다. 2005년 골드만삭스 입사 전, 국내 기업 50여 군데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로열더치셸 입사는 100여 군데의 입사 지원과 수십번의 인터뷰 끝에 가능했다. 골드만삭스에 입사하고 나서 뜻하지 않게 암세포가 발견됐다. 25살 청춘에게 가혹한 형벌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완쾌됐다. 

골드만삭스에서는 9개월 근무했다. 예비 펀드매니저로 수백억원을 쥐락펴락하던 그녀가 회사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2006년 로열더치셸 입사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2005년 세운 73개의 꿈 중 최근 6년간 뮤지컬배우되기, 벨리댄스공연, 라틴아메리카 여행, 부모님 집 지어드리기 등 35개의 꿈을 이뤘거나 이뤄가고 있다. 최근에는 83가지로 꿈이 늘었다. 


“2015년에 결혼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꿈리스트라고 대단한 것만 있는 건 아니예요. 평생 50㎏을 유지하며 10살 이상 어려보이겠다는 꿈도 있어요. 인도 발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구요.”

김씨는 죽어서도 꿈을 꾸려한다. 빼곡한 꿈 리스트 아랫부분에 ‘사망후’란 전제로 장기 기증과 전재산 기증이 명기돼 있다. 기자는 그 순간 가늠하기 힘든 그녀의 꿈 크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녀의 장롱 속엔 명품 하나없지만, 그녀의 인생은 누가뭐라해도 명품이다.

‘골든벨 소녀’ 김수영은 중학교 시절 누구를 만나건 싸움질이었다.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중학 중퇴와 재입학, 미래는 깜깜했다. 상고 입학 후 인생 설계를 위한 자기만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빛을 찾았다. 연세대 영문과 졸업 후, 골드만삭스와 로열더치셸로 이어지는 이력서는 꿈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꿈 리스트에 83가지의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 중에는 2015년에는 결혼하는 것과 사후에 장기기증이라는 아름다운 꿈도 들어있다.
 


<글 강석봉 기자·사진 서성일 기자>


입력 : 2011-03-28 17:01:26수정 :

 

 

출처 : 스포츠칸 2011.3.2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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