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연습(練習)

킹스텔라 2017. 11. 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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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있다.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돋우어 보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발화 속도나 억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구절에서 끊어서 말하고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답답할 뿐이다.

 

   며칠 전,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시 한 편을 메일로 받았다. 10월의 마지막 날에 도민과 함께하는 가을 시 낭송회를 개최하는데 시 낭송을 해달란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선뜻 해보겠다고 답을 한 것이 올가미에 몸이 묶인 것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전문 낭송가가 아닌 일반인이 하는 것이 더 신선하고 듣기 좋다며 감정을 살려 마음대로 해 보라고 했지만 쉽지가 않다.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어보라는 말씀에 읽어본 이후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본 것이 얼마 만인가.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기를 내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읽어보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 핀잔만 듣는다. 그럼 당신이 해보라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내에게 읽게 하며 귀 기울여 보며 연습을 반복한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아내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며 감정이 살아난다.

 

   이번에 낭송하는 시는 김춘수 시인의 강우((降雨)’라는 시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지 2년여가 지난 후 쓴 작품으로, 아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아내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애절하게 노래하는 시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풍경을 제시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아내를 찾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든다. 특히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쏟아지는 비에 비유하며, 결국은 아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절망하고 체념하는 슬픈 시이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 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연습을 반복하면서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항상 옆에 있기에 아내의 존재감과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아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먹으러 외식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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