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T 여인

킹스텔라 2024. 1. 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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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이것은 어느 것이 맞아요?”

발음이 서툰 그녀는 궁금한 것이 무척 많은가 보다. 아직 앳된 까무잡잡한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에 찬 그늘이 살짝 스치는 듯 비치다 희망의 빛이 살아나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표정이 진지하다. 또랑또랑한 까만 눈망울은 미지의 세계를 탐하는 탐험가의 눈빛처럼 반짝이며 빛을 발하고 있다. 평안한 삶이 도래했을 때 굴곡진 인생 여정의 경험담을 추억하듯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힘든 여정이 진행 중이라면 어떠한 생각이 들까.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00년 만에 가장 무더웠다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다문화가족센터에서 한국어 능력검정시험 준비반인 토픽 강의를 맡아 수업을 했었다. 대다수가 20대 초반 외국 국적인 새댁으로 각자 목표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한다. 일정 수준의 한국어를 배워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든가 한국어 능력검정시험에서 좋은 급수를 취득하여 한국의 상급학교에 진학한다든가 또는, 취업을 목표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 그중 나의 질문에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며 열심히 강의를 듣는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듣기에 생소한 이름의 T 여인이다.

 

  베트남 출신으로 먼 고향을 등지고 혈혈단신으로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이다. 매시간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녀린 손으로 서툴게 연필을 잡고 공부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손에 든 연필을 꾹꾹 누르며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그녀의 모습은 희망과 꿈이 잊히지 않고 실현되도록 각인이라도 하듯 쉼 없이 반복되었다. 그와 같은 열의는 여름학기가 끝나고 가을학기에 재수강을 하면서도 계속되었다.

 

  이 여인은 4년 전에 한국에 왔다. 신혼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남편은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인해 평온한 날이 없었다. 불행히도 남편은 극약을 마시고 사랑하는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무참히 세상을 등졌다. 의지할 사람은 오로지 남편밖에 없는데 혹시 자신으로 인한 사달이 아닐까를 생각하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도 없이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댁 생활의 고단함과 외로운 날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잃은 충격에 시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외로움과 문화 차이, 그리고 언어 문제인데 이러한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기란 쉽지 않았나 보다. 여인은 다시 한 남자를 만났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삶을 이어갔지만 야속하게도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의 폭력에 시달리던 이 여인은 또다시 혼자의 몸이 되고 말았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다 했던가? T 여인은 다시 일어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흘린 눈물은 그만 거두고 새로운 희망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그동안의 모든 일이 한국어가 부족하여 일어난 소통 부재의 탓일까? 기본적인 한국어를 해야만 한국에 정착하여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그 무더운 여름날도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겨울이 다가오지만, 그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앞으로 미용실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 꿈이 사그라지지 않고 꼭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외로움 때문에 또는 삶이 힘들어 한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눈물과 땀은 똑같이 소금기가 있지만, 흘린 결과는 다르다고 한다. 땀은 기회를 낳고, 눈물은 동정을 낳는다고 하는데 동정이 아닌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T 여인이 무척 고맙고 대견스럽다. 끝없이 추락하는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꿈을 위해 도전하는 여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눈물과 땀방울은 똑같은 물이지만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흘리는 그녀의 땀방울이 아침 햇살에 반사된 영롱한 물방울같이 아름다워 보인다.

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이 있고 짙은 어둠이 가시면 밝은 빛이 다가온다고 한다.

 

 

* 결혼이주여성이 쓴 시가 마음을 울린다.

 

<어머니>

 

집 걱정하지 말고 꼭 잘 살아야 한다고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고 계시던 어머니

 

하루도 잊은 적 없고

맛난 음식 고운 옷 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지금도 집 앞 골목서 기다리실 것 같아

마음만 숨차게 달려갑니다

 

꼭 잘 살게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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