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풍금이 있던 자리

킹스텔라 2024. 2. 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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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에 다녔던 수십 년 전의 아득한 추억이 망각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지금은 도시화 되어 농촌보다 도시 인구가 훨씬 많지만, 그때는 대다수가 농촌에서 살았다. 오십 대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학교가 있는 큰 동네까지 십 여리 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서 등하교했던 기억이 있었으리라.

 

  방과 후 하굣길에 집으로 갈 때면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들과 냇가에서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연을 벗 삼아 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냇물이 얼마나 맑았는지 물고기를 잡을 때면 돌멩이 사이로 물고기 노는 모습이 선명하게 다 보였고 그 물을 그냥 손으로 떠 마셨다. 날이 더우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물속에 풍덩 들어가 수영도 했다. 또 배가 출출하면 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 달콤하고 쌉쌀한 칡을 먹고 꽃잎도 따 먹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은 일상의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 잊게 한다. 물길 따라 차를 달릴 때나 산속을 거닐 때면 정겨운 옛 고향길을 지나는 것 같아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오로지 시험성적에 얽매여 방과 후에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바삐 학원으로, 또는 도서관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본다. 마치 주인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따라가는 고삐 매인 송아지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새로 개교한 모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커다란 정문 안 진입로에 깔린 보도블록 사이에는 잔디가 파랗게 돋아나 어느 별장의 아름다운 정원 입구같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바로 옆에 만들어진 널따란 주차장은 주차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깨끗한 도화지에 그려진 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또한, 신식 건물답게 멋들어진 외관과 화려한 색상은 새색시가 아름다움을 뽐내려 예쁘게 화장한 모습처럼 화려한 빛깔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크지 않지만, 조경이 잘 된 운동장의 무지개 색상 다용도 미끄럼틀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미끄럼을 타며 즐겁게 뛰놀고 있다. 바로 옆에는 멋진 쉼터가 있고 깨끗하게 단장된 식수대는 조형미를 뽐내고 있다. 그 옛날 교장선생님께서 훈시하던 회색빛의 콘크리트 덩어리의 멋없는 조회대가 아닌 미적 감각이 뛰어난 멋진 조회대가 조각품처럼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조회대 위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던 교장선생님의 훈시하는 모습이 망각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커다란 유리로 된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널따란 현관 벽 정면에 부착된 태양광 발전 현황판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발전량, 누적 발전량 및 CO2 절감량 등이 디지털 화면에 표시되어 있다. 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으로 학교에서 필요한 전기를 자체 생산하여 교내의 냉난방을 해결하며 자동 온도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빛바랜 사진첩을 들춰보듯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해 본다. 교실 한가운데 놓인 녹슬고 볼품없는 커다란 무쇠 난로에 장작을 태워 교실 안을 따스하게 하던 선생님이 눈앞에 떠오른다. 난로에서 나오는 연기에 눈물 흘리며 추운 날인데도 창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공부하던 그때와는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의 차이를 느낀다.

 

  교실 바닥은 요즘 가정의 거실에서나 볼 수 있는 원목 무늬목이 깔려있고, 복도는 유리처럼 맑고 윤기가 흐르는 고급 타일이 깔려있다. 나무가 썩거나 못이 빠져 삐거덕거리고 청소할 때 들기름을 바르고 초를 칠했던 송판으로 된 교실 바닥이 아니다. 교실 안에는 개인별 책상과 사물함이 고급스러운 가구로 깨끗하게 갖추어져 있다. 교실 앞면과 뒷면의 환경판은 어느 유명 작가가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듯이 멋지게 꾸며져 있다. 그리고 교실의 복도 끝 실내에는 유리로 막힌 친환경 학습장이 온실로 꾸며져 각종 화초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오래전, 드넓은 산과 들과 내가 친환경 학습장이고 자연 학습장이었는데 지금은 블록을 쌓아놓은 듯한 답답하고 단조로운 아파트, 거리를 온통 뒤덮은 콘크리트 속에서 생활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없으니 교실 안이라도 이처럼 자연 학습장을 만들어 놓고 관찰하는 모양이다.

 

  교실 안, 선생님 책상 위의 개인용 컴퓨터에는 과목별 교육 자료가 동영상과 함께 담겨 있고, 교실 앞 한쪽 천정에 걸린 커다란 LCD 텔레비전은 컴퓨터와 연결되어 수업자료가 화면에 나타나 손쉽게 수업을 할 수 있다. 풍금이 있던 자리에는 풍금이 사라지고 컴퓨터가 놓여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음악이 흘러나오고 궁금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하고 좋은 첨단시대에 살고 있다.

 

  그 옛날, 볼품없는 초라한 학교 건물과 낡은 책상, 그리고 변변하지 못했던 학습 도구와 교재들, 낡은 풍금 하나를 가지고 전 학년이 돌려가며 노래를 부르던 즐거운 음악 시간이 있었다. 무척이나 못살았던 어린 시절이지만 돌아보면 마음은 가장 풍요로웠고 행복했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세월이 흘러 음악 시간의 풍금 소리와 낭만이 사라졌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목청껏 노래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정을 나누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초라하다 생각되는 그 시절이 최고였고 마음 풍요롭고 정이 깊었던 행복했던 유년시절이다. 시설이 현대화되고 교재 교구는 첨단화되어 부족한 것이 없는 환경, 마우스에 손가락 하나만 갖다 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감동도 설렘도 없는 클릭 수업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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