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누가 뽀롱이를 죽였나

킹스텔라 2023. 8. 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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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한 쇠창살 안이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고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하고, 생리적인 해결뿐만 아니라 잠도 여기에서 자야만 한다. 내 본성은 조금도 펼치지 못하고 평생을 자유라고는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지 오래다. 본래 고향은 여기가 아닌데 언제부턴가 여기가 내 집이 되었고 고향 아닌 고향이 되었다.

 

  오늘, 평생을 갇혀 지내다 뜻하지 않게 처음으로 자유를 얻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는 줄은 예전에 알지 못했다. 몸을 감싸는 바람결이 이렇게 부드럽고 상쾌한지도 예전엔 몰랐었다. 푸른 숲과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또 얼마나 황홀한지 처음으로 느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더 멀리 구경이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어 쇠창살로 둘러싸인 집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만 맴돌았다. 집에 있는 어린 새끼와 오랫동안 함께한 짝도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렇게 난생처음 아름답고 황홀한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를 누릴 줄도 몰랐고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도 몰랐다. 낯선 환경이 점점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단 네 시간 만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

 

뽀롱이

 

  대전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휴대전화를 캡처한 화면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금일 17:10분경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1마리 탈출, 보문산 일원 주민 외출 자제 및 퇴근길 주의 바랍니다.아들은 이러한 재난문자는 처음 받아본다며 의아해했다. 사건은 단 네 시간 만에 뽀롱이 퓨마를 사살하는 것으로 끝났다.

  허무했다.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화도 나고 퓨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꼭 사살이라는 방법밖에 없었단 말인가. 마취총을 한 번 쏴서 생포에 실패했으면 다시 한번 쏴서 생포했으면 되었을 텐데.

 

  산속에는 동물원을 둘러싼 긴 담장이 있고 그 높이가 2m나 된다고 한다. 퓨마가 그 담장을 넘어가지 못하고 담장 안 산속에 숨어있었다는데 꼭 사살이라는 방법을 택했어야만 했는가? 퓨마도 모처럼의 자유가 스스로 불안하니까 멀리 가지 않고 안정적인 곳을 찾아서 숨어있었던 것 같은데 평생 감옥살이도 모자라 마지막을 총살로 마무리한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화가 치밀었다.

 

  몇 년 전 고양이를 키웠었다. 누런 털에 검은 털이 군데군데 섞인 예쁜 암컷 고양이였다. 얼굴은 유독 동그랗고 눈이 왕눈이처럼 크고 반짝거렸다. 딸이 이름을 공룡이라 붙였는데 성이 씨라 이공룡이라 불렀다. 공룡처럼 튼튼하고 존재감 있게 잘 자라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공룡이는 재롱을 어찌나 잘 부리고 장난을 잘 치는지 이 녀석과 함께 있으면 심심한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추운 겨울에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얼마나 따스하고 좋은지 모른다. 고양이도 내 가슴 안이 엄마 품속같이 포근하고 기분이 좋은지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품 안에서 평온한 모습으로 잠이 든다. 온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한 식구처럼 자랐다.

 

오른쪽이 공룡이

 

  공룡이는 아파트 9층의 집 안에서만 자랐다. 몇 년을 키웠어도 밖이라는 세상은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루는 딸이 강아지 목줄을 사 왔다. 고양이가 좋아할 거라면서 고양이를 데리고 바깥 구경을 한 번 시켜주자고 했다. 좀 헐렁한 듯하였으나 쇠줄로 된 목줄을 고양이 목에 걸고 아파트 옆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공룡이는 모든 것이 낯설은지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주춤주춤하면서 두리번거리며 따라왔다. 조금 가다 보니 맞은편에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낯선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때 공룡이가 갑자기 깜짝 놀라 발작을 일으키며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질 않았다. 결국에는 눈빛까지 이상해지면서 발버둥 치더니 목줄이 풀리며 숲속으로 영영 사라져버렸다.

  처음으로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좀 더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려 했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가져왔다. 공룡이가 새끼 때부터 시골집 마당이나 길고양이로 자유롭게 자랐으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은 수년이 지났지만 나와 딸은 공룡이를 그리워하며 아무리 예쁜 고양이가 있어도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움과 자책감이 무척 컸나 보다. 평생 우리에 갇혀 지낸 뽀롱이를 보면서 공룡이가 오버랩 됐다.

 

  뽀롱이는 문을 잠그지 않은 사육사의 실수로 바깥세상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멀리 가지도 못하고 동물원 산속의 경내를 배회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의 욕심으로 갇혀있던 뽀롱이는 결국 인간의 실수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평생 처음 느꼈을 자유였을 텐데 그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고 느낄 틈도 없었다. 뽀롱이나 공룡이나 모두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다음 생이 있다면 동물원의 구경거리 뽀롱이가 아닌 초원을 맘껏 뛰어다니는 퓨마로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뽀롱이와 유사한 안타까운 사연이 또 알려졌다.

  어제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목장에서 키우던 희귀종 암사자 '사순이'가 우리에서 탈출했다.

사순이는 우리에서 20~30미터 떨어진 수풀에서 발견됐고 사순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엽사 2명에 의해 사살됐다.

목장주에 따르면 사순이는 평소 사람이 손을 대고 쓰다듬어도 될 정도로 유순했다고 한다.

마취총을 쏴서 생포했으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머리속을 맴돈다.

사순이와 뽀롱이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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