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둘레길을 걸으며

킹스텔라 2023. 8. 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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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이 곱게 물든 어느 날, 여울 소리가 귓전에 음악처럼 아름답게 흐르는 둘레길을 다녀왔다. 달도 머물다 갈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는 월류봉, 그 산허리를 끼고 도는 물길 따라 펼쳐진 이십 리 둘레길은 가을 오색단풍과 어우러져 화려하기 그지없다.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서 시작되는 월류봉 둘레길은 완만한 석천계곡의 물길을 따라 산허리로 이어진다. 굽이진 길은 논두렁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산허리를 돌아간다. 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의 산자락을 걷는 착각에 빠진다. 철모르던 유년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물고기를 잡고 칡을 캐며 뛰어놀던 기억이 망각 속에서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둘레길이 완공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길 옆으로 굽이치며 흐르는 석천의 여울 소리를 들으며 가을 단풍으로 만산홍엽을 이룬다. 산허리로 난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무릉도원이 여기인 듯 환상적이다. 때로는 흙길을, 때로는 낙엽이 뒹구는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 발밑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발자국을 빨리 옮기지 않아도 된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며 느릿느릿 움직여도 된다. 천천히 간다고 누가 뭐라 재촉하지 않는다. 여기서 쉬어간들 어떠하며 바위에 누워서 잠을 잔들 어떠리. 뒤돌아보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빨리빨리 앞으로만 달렸던 것 같다. 가족들과도 여유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하고 아쉬운 세월만 보내지는 않았는지. 그만큼 세상 살기가 쉽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남보다 앞서야겠다는 나만의 착각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면 인생은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올바른 방향으로 만족하며 달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여울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길 위에 서보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길가에 있는 바위나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모처럼 이러한 묵상에 잠기게 된다.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심신이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이 또 하나의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둘레길을 걷다 보니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 여러 곳에 있었다. 세움 간판을 예쁘게 만들어 글을 새겨 둘레길 군데군데 세워 놓았다. ‘같이 걸어요’, ‘웃어요 당신’, ‘꽃길만 걸어요등 한층 기분을 좋게 하며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글들이다. 인생길이 꽃길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발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속에 물고기가 유유자적하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둘레길을 걷다 보면 숨차게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때로는 넓고 평탄한 길도 있지만 좁고 험하고 울퉁불퉁 파인 길도 있고 미끄러운 길도 있다. 지나온 인생길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이러한 시기를 지혜롭게 잘 넘기다 보면 행복하고 평온한 생활로 이어졌었다.

 

 

  오늘 월류봉 둘레길을 걸으며 한 박자 늦게 가더라도 여유가 있고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여유가 있고 풍족하더라도 그 삶에 만족할 줄 모르고 더한 욕심을 내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조금 부족하고 힘들어도 현재의 자기 삶에 감사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멋진 삶이 아닐까를 깨닫게 된다. 진정한 행복은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닐까.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고 내 마음 가까이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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