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나의 인사

킹스텔라 2024. 4. 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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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다 오세요.”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보다 먼저 출근하는 아내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또는 은혜를 입었거나 치하하는 예의를 표하는 것이 인사다. 상황에 따라 인사를 하는 방법이나 행동도 다양하다. 나이가 든 사람, 젊은 사람, 집안에서 부모님과 자녀에게 인사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미운 사람일수록 잘해주고 감정을 쌓지 않아야 한다는 뜻에서 ‘미운 사람에게는 쫓아가 인사한다.’는 속담도 있다. 인사는 많이 받는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아침 인사에 아내는 별로 좋아하질 않고 때로는 짜증도 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침마다 아내에게 이와 같은 인사를 건넨다.

 
  아내는 교사다. 어느덧 35년이 넘는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보냈다.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며 큰 보람으로 느끼며 보낸 세월이다. 때로는 제자들이 훌륭하게 자라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었다고, 사관학교에 입학했는데 선생님의 영향력이 컸다면서 오랜 시간을 거슬러 인사하러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며 무척이나 보람을 느끼며 좋아했다. 관리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고 오직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평생 아이들만 가르치는 일만 한다면 얼마나 좋고 즐거우냐고 종종 얘기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일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내는 요즘 학교생활을 무척 힘들어하며 종종 짜증을 낸다. 아직 정년이 수년 남았지만 퇴직하고 싶다고 가끔 얘기한다. 작금의 세태가 아이들이나 학부모나 학교의 정책이 교사로서 아이들을 소신껏 행복하게 가르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식어간다며 안타까워한다. 가르치는 일이 즐거워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갈 생각을 하면 너무 힘들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나 휴일이면 아이들과 함께하며 시간 보내길 좋아했다. 아이들을 종종 집으로 불러들여 먹을거리를 만들고 나누며 같이 놀아주며 즐겁게 지내곤 했다. 그런 아내가 지금은 교사의 일을 힘들어하며 그 자리를 내려놓으려 한다.

 
  몇 년 전 아내는 해외에 있는 한국국제학교에서 3년간 초빙교사로 파견 근무를 하고 돌아왔다. 그곳에서의 교육은 평소 생각했던 이상적인 학교생활이었다고 얘기한다. 성적에 얽매여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일이 없고, 학부모들의 성화에 학교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일도 없고, 교육청에서 이래라저래라하는 간섭도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부담 없이 즐겁게 뛰놀며 적성에 맞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부하는 모습이 정말 평화로웠고, 교사는 평소 소신대로 아이들만 지도하면 되는 이상적인 교육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여러 가지 벽이 앞을 가로막는 모양이다. 거기다 아이들도 예전 같지 않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며 주관적인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아침마다 출근할 때면 무척 힘들어한다.

 
  “잘 놀다 오세요.” “애들하고 싸우지 말고 잘 놀다 와요.”란 인사는 이러한 아내를 위한 나름의 계산에서 나오는 인사다. 기왕 가르치는 일을 매일 할 것이라면 아이들과 즐겁게 논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편하게 보내라는 의미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예전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뜻이다. 세상사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게 되질 않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누구나 굴곡이 있고 슬럼프를 겪게 마련이다. 그 일에 대한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동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늘 시간만 보내면서 지지부진하게 일한 사람에겐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는다.
 
  아내는 아침마다 내가 건네는 인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언젠가 아내가 지금의 슬럼프를 극복하며 마음의 평안과 가르치는 일에 자부심을 얻기를 희망한다. 이럴 때일수록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라는 마음으로 예전처럼 즐거워하며 큰 보람으로 느끼는 그 날이 다시 오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출근하는 아내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잘 놀다 오세요.”
 
 
* 이 글은 몇 년 전에 쓴 글이며 나의 저서 <마흔네 개의 돌>에 실려있다.
아쉽지만 아내는 얼마 전 명예퇴직을 하여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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