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아빠 용돈

킹스텔라 2025. 7. 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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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자 아들이 두툼한 흰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표지에는 아빠 용돈으로 시작하는 작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수십 장이 들어있었다.

아빠야! 21년 동안 아들 키우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들이 번 첫 돈이니까 맛난 거 사드세요. 앞으로 몇 년만 더 고생하시면 사회인이 되니까 몇 년만 더 길러 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처음으로 용돈을 받은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특별히 용돈이 필요치 않아 그때그때 돈이 필요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렸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유학하며 자취를 하다 보니 매월 일정한 금액의 용돈이 필요했다. 이때 학생들의 시내버스 요금이 30원인가 하던 때인데 한 달 용돈으로 3,000원을 받았으니 교통비와 학용품비, 식비를 제외하면 더는 쓸 돈이 없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오 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께서는 한 달에 한 번만의 용돈을 주셨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추가로 주는 경우는 없었다. 도저히 생활이 안 된다 싶으면 다음 달 받을 용돈에서 일부를 미리 받고 다음 달에는 그만큼을 덜 받아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생존을 위해서 한 달 용돈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사전 계획에 의해 사용하지 않으면 그달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용돈 생활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용돈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계획적인 소비가 몸에 익숙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경제활동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대학생인 아들은 얼마 전 방학을 이용하여서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타지의 기업체 생산현장에서 숙식하며 밤늦은 10시까지 야근하면서 힘들게 일을 했다. 아들은 일을 시작하면서 야근을 하면 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고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일이 힘든지 야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했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돈의 가치와 돈의 의미를 알고 스스로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배워간다 생각하니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몸으로 직접 체험한 그러한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 의미 있는 자산이 될 것이란 생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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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아들은 씀씀이가 계획적이지 못하고 헤프다고 생각했다. 정이 많아서인지 친구들이나 자신에게 너무 쉽게 돈을 쓴다는 생각이 들어 돈 벌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니 아껴서 쓰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오래전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셨던 대로 매월 일정액의 금액만 주면서 더 이상의 용돈은 없다고 다짐을 받으며 용돈을 주었다. 이런 아들이 한 달 동안 일터에서 힘들게 번 돈 중 일부를 뚝 떼어 아빠에게 용돈을 준 것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은 금액을 아낌없이 흰 봉투에 가지런히 담아서 아빠가 들어오자마자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아빠만이 아니고 엄마에게도, 심지어 직장생활하는 누나에게도 각각 용돈을 주었다.

 

  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어머니로부터 받으며 아껴서 쓰라는 잔소리를 듣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고 섭섭했었는데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소리를 아들에게 하고 있다.

지금은 풍요로운 시대이다. 아무리 여유롭고 풍족하더라도 그 삶에 만족할 줄 모르고 더한 욕심을 낸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끼기만 한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넉넉하든 아니면 조금 부족하고 힘들어도 현재의 자기 삶에 감사하며 의미 있게 쓰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멋진 삶이 아닐까.

들을 보면서 어떠한 삶이 행복한 삶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아들의 미래가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아들! 고마워, 오늘은 아빠가 통닭 사주마.

 

이대성 수필집 「마흔네 개의 돌」210페이지 <아빠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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