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에서, 여름으로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를 가리켰다.
창문을 여니 공기가 칼날처럼 뺨을 스쳤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속까지 얼어붙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춥지 않았다.
오늘 밤, 나는 여름으로 떠난다.
지금도 영상 26~27도의 나라, 베트남 나트랑(나짱)으로 간다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졌다. 추위는 잠시 견디면 그만이지만, 여행은 기다린 만큼 설레는 법이다.
저녁 무렵, 친구 부부와 함께 공항에서 만났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0분이면 닿는 청주국제공항은 요즘 들어 부쩍 분주해졌다.
국제선이 늘어나면서 지방 공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활기를 띤다. 주차장은 이미 수천 대의 자동차로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출국장에는 여행 가방을 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의 표정에는 공통된 빛이 있었다.
잠시 떠난다는 기대, 일상으로부터의 작은 탈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는데, 바지락 하나 없는 멀건 국물이 허전했다. 여행 전의 식사는 늘 의식처럼 느껴지는데, 그날의 찌개는 출발의 설렘을 다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몇 시간 뒤면 따뜻한 나라의 공기를 마시게 될 테니까.

밤 8시 50분, 티웨이 항공기는 어둠을 가르며 떠올랐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점처럼 멀어지고, 기내는 조용한 기대감 속에 잠겼다.
다섯 시간 남짓의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베트남 나트랑의 깜라인 국제공항. 시계는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곳은 아직 전날 밤이었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사람의 물결이었다.



입국 심사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얽히고설킨 줄 속에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놀랍게도 들려오는 말은 모두 한국어였다. 인천, 김해, 대구, 그리고 청주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 이 밤에 한꺼번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을 넘게 입국 절차를 받느라 서 있자 다리는 무거워지고 눈꺼풀은 자꾸 내려앉았다.
여행은 설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깨닫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베트남 새벽 2시) 무렵, 입국 절차에 무려 두 시간이 걸렸다.
낯선 공기의 온기는 분명 겨울과 달랐다. 차가운 숨 대신 부드러운 밤공기가 피부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비로소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공항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베트남 열대 과일인 망고를 하나 입에 물었다. 피로가 풀리는지 맛이 참 좋았다.
그리고 이내 침대에 몸을 눕혔다.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몇 시간 뒤 눈을 뜨면, 본격적인 베트남 나트랑의 바다와 햇살이 나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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