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세상읽기

마리셀씨와 두 아이, 첫 필리핀 친정 나들이… 남편이 없었다

킹스텔라 2011. 1. 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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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비행기!” “응?” “아빠? 비행기? 아빠….”

태연(6)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아빠 만나러 가는 줄 안다, 태연이는.

지난 24일 오후 8시10분 마리셀(29)과 태연, 보경(3) 세 식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필리핀 마닐라행 제주에어 항공기 7C2301편에 몸을 실었다. 마리셀이 한국에 시집 온 지는 올해로 7년째다. 첫 친정 나들이다. 친정엄마한테 태연이와 보경이를 보여 드릴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충북 진천중앙교회(이익상 목사)에서 마련해 준 왕복 티켓을 손에 꼭 쥐었다. 교회에서 선물해 준 전기밥솥도 챙겼다. 고추장, 고춧가루도 가져간다. 한국요리 해 드리겠단다. 한 짐이다. 여행가방에 박스 2개. 교회 이대성 장로 등 3명이 거들었다. “마리셀은 남편이 없잖아요. 우리가 도와줘야지요.”

자상하고 속 깊은 남편

탈 없는 가정이었다. 용접공인 남편은 누구보다 성실했다. 손재주로는 목포조선소에서 으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꼬박 월급을 타 오진 않았어도 돈 때문에 싸울 일은 없었다. 말 수가 적지만 속이 깊었고, 태연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37세에 마리셀과 결혼해 이듬해 얻은 아들. 아빠를 꼭 닮았다. 쉬는 일요일엔 늘 목마를 태워줬고, 심한 장난을 쳐도 큰 소리 한 번 안 냈던 아빠였다.

“우리 신랑 착해. 좋아요. 아이큐 145.”

마리셀보다 열네 살 많은 신랑은 덩치만큼 마음 씀씀이가 컸다. 가난해 대학을 못 갔지만 유능했다. 힘든 일은 삭였고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오빠 힘들어? 그럼 말해? 그럼 말 안 해.” 그게 병이었을까.

불시에 찾아 온 우울증. 시어머니가 기억하는 아들의 투병기간은 한 달이지만, 며느리 마리셀이 기억하는 남편의 투병기간은 2년이다. “신랑 아파요. 자주 자주 병원. 옛날부터 그렇게 해요. 2년 됐대요. 내가 말 못해요. 자기 아파요. 혼자만 마음 아프네.”

남편의 죽음

2008년 9월. 마리셀의 남편 김상기(당시 40세)씨는 충북대병원 95병동에 강제입원 됐다. 말이 없던 김씨가 우울증세로 혼자 중얼거리기를 한 달. 운전대를 잡지 못해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하고 늦은 저녁 집을 나서면 며칠째 소식이 없었다. “충북대병원에서 대번 입원 시키더라고. 면회를 두 번 갔는데 엄청 좋아져서 참 좋았는디. 글씨 추석 명절 쉬라고 보냈는데 몰래 내빼서 그 난리가 난겨. 멀쩡했지. 야(태연이) 시 살 먹도록 괜찮았다니까.”

어머니 남수자(71)씨는 가슴을 쳤다. 추석 당일 토요일 오후 8시30분. 상기씨는 어수선한 틈을 타 집을 나갔다. “작정을 하고 내 뺀규. 사방을 찾아헤맸쥬….”

진천 덕산면 한 아파트 빈 집. 상기씨는 그 집에서 숨을 끊었다. 뒤늦게 도착한 가족은 망연자실했다. 세 살 된 태연이는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현장에 서 있었다. 임신 3개월째인 엄마 마리셀의 손을 붙잡고.

첫눈에 반한 첫사랑

얼마나 사랑했던가. ‘Our wedding day at the western hotel on July 27, 2005(웨스턴 호텔 결혼식, 2005년 7월 27일)’ 사진 옆에 마리셀이 적어놓은 메모다. 007작전 수행하듯 몰래 결혼식을 치르고 “결혼했어요”라고 양가 부모에게 전화로 통보했던 커플. “우리 엄마 싫어해. 어떻게 알아. 무서운 사람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 그래서 그랬어요(결혼해버렸어요).” “나한테 얘길 안 하고 알면 못 가게 할까봐. 첨에는 한국 사람하고 안 하는 게 어떻게 마음이 아픈지.”

혼기를 넘긴 처녀 총각의 결혼이었다. 마리셀의 고향 친구들은 보통 열여덟에 시집갔다. 스물셋이면 노처녀다. “필리핀 좋은 사람 없어요.” 마리셀은 과자공장 근로자였다. 나이는 찼고 마땅한 신랑감은 없었다. 그러다 동네 친구 따라 결혼중개업체에 가입했고, 한국에 와 상기씨를 만났다. “신랑이 처음 만난 사람. 투 타임스 데이트.” 한국에 와서 처음 소개받은 남편이랑 두 번 만난 뒤 결혼했다는 얘기다. 첫눈에 반했다는 그녀. 신랑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리고 첫사랑이었다.

필리핀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치르고, 상기씨는 일주일 만에 마리셀은 한 달 뒤 한국으로 들어왔다.

마리셀의 가출

“온 지 삼일 만에 빨래를 하더라고.”

한국에 와서 3일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빚을 내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한국말을 못하는 며느리. “어머니 막걸리?”이러고는 시어머니 앞에 막걸리를 대접에 가득 부어 놓던 대책 없는 며느리였다. “암 것도 몰랐어유. 이제 다 배웠어유. 애는 착혀. 내가 뭐라 하면 싱글싱글 웃고 말어. 아이고 누구를 바라고 살겄어. 잘해유 쟤에.”

미워도 내 며느리 떡두꺼비 같은 손자 낳아준 며느리였다. 분가해 살아도 행여 아들 굶길까 분주하게 드나들었던 시어머니. “내 손으로 메주도 쑤고 장도 담그고 다 해줬지유.”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왔다. 아들 병 나을 때까지만 같이 있자 했다. 그런데 아들은 영영 가 버렸다. 며느리는 매일 컴컴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태연이는 “아빠 아빠” 하면서 아빠 자리를 가리켰다. “얘야, 애 낳아서 뭣하냐. 낳으면 너도 고생이고 나도 고생이다.” 마흔하나에 과부돼 5남매를 홀로 키웠던 시어머니. 그 어머니는 자신보다 더 딱한 며느리 생각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말은 심장에 박혔다. 며칠 뒤, 마리셀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2009년 2월 22일. 유복녀 보경이가 태어났다. 보경이는 엄마를 닮아 쌍꺼풀이 깊었다. 새벽 6시부터 진통이 시작됐는데 6시45분에 출산했다. “둘째는 괜찮아요. 태연이는 여덟 시간(진통했어요).” 청주 한 산부인과에서 홀로 아이를 낳았다. 시집에서 나온 지는 7개월째. 청주시 상당구 이주여성센터에서 머물렀다. “애를 낳았댜. 센터에선 못 사니 데려가라 하더라고유. 얼른 보내만 주십시오 그랬지유.” 돈 40만원을 들고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랬다.

고부는 보경이 태어나면서부터 같이 살았다. 그해 태연이는 침례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태연이는 말을 못했다. 지금은 말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곧잘 논다. 보경이는 내년에 어린이집에 간다. 보경이는 영리하다. 보건소에서도 머리가 비상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리셀은 지난해 한국 국적을 인정받았고, 두 아이도 한국인이 됐다. 한국말을 배운 지도 일년이 지났다. 동네 복지관에서 수업을 듣는데 태연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두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시어머니하고도 정이 들었다.

“애들도 안됐고 얘도 딱혀유. 그래도 참 밝아. 그래 내가 살지. (친정으로) 가라고 했쥬. 근데 싫데유 안 간데.”

친정에서도 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마리셀은 한국에 남기로 작정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다. “필리핀 안 좋아요. 애들 못 키워요. 일 없어요.” 시어머니 걱정도 발목을 잡는다.

“어머니(시어머니) 죽으면 안 돼요. 지금 만날 아프다고. (애들도) 할머니 있어 괜찮은데요. 할머니 없으면 큰일 났어요.”

시어머니는 매일 품팔이로 나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애들 생각하면 살아야 한다. “사돈한테 내가 엄청 보고 싶다고 너희 말로 해라 그랬어유. 나도 매누리 혼자돼서 가는 마음이 엄청 저기한데 사우하고 같이 오면 좋을 텐데 자기 마음은 오죽하겄어유?”



“엄마니까 괜찮아”

7년 만에 가는 친정이다. 친정은 수리가오의 호나산(Hornasan). 마닐라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부투안공항까지 가서 다시 차로 4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바닷가 시골마을이다. 친정아빠 페르도 아말리아(64)씨와 엄마 클라리타씨 아말리아(65)씨는 코코넛 농사를 짓는다. 8남매 중 일곱째이자 막내딸이 마리셀이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생선 수프도 먹고 태연 보경이와 모래탑 쌓기도 하려 한다. 한국인 신분인 마리셀이 필리핀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21일. 한국에 돌아가면 세월을 또다시 흘려보내야 할 것이다.

오후 6시30분. 두 아이 데리고 갈 길이 멀다. 마리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여권과 항공권 잘 챙겨야 한다. 공항에서 보니 더 작아 보이는 몸이다. 150㎝가 조금 넘는 키에 꼬마 둘을 데리고 출국장을 들어서는 마리셀. 세 식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마리셀에게 들었던 ‘꿈’ 이야기가 생각났다.

“Dream! 남편 만나가 행복한 가족 갖고 싶었어요. 착한 남자 만나 가고 싶었어요. 근데 괜찮아. 애들 있잖아요. 엄마니까 괜찮아.”



출처 :  국민일보-미션라이프-이웃-이경선 기자·사진 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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