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연날리기 (월간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수상작)

킹스텔라 2015. 6. 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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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연날리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자치기 등 다양한 놀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새해가 되면 마을 앞 언덕이나 논두렁에 올라 바람과 마주하며 연날리기를 했고, 연을 만들기 위해 멀쩡한 대나무 우산살을 뽑아 연을 만들다 부모님께 혼났던 기억도 잊혀진 추억 속에서 살아난다.

  주로 사각형의 방패연이나 마름모꼴 모양에 꼬리를 길게 붙인 개구리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그리고 누가 멀리 띄우는지를 시합하며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사이에 주로 즐겼었다. 그리고 그해의 재난을 멀리 보낸다는 뜻에서 연줄을 일부러 끊어 연을 멀리 띄어 보내기도 했고, 상대방 연을 떨어뜨리기 위해 연줄 끊기 싸움도 했다.

 

  

  새해 첫 날, 졸업반인 대학생 딸아이가 연날리기를 한다면서 친구와 커다란 연을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연 위에는 새해에 바라는 희망이 또박또박 펜으로 정성스럽게 적혀 있는데 자기의 소원만 적은 것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의 각자 소원을 모아서 연 위에 함께 적었다. 무슨 내용인가 봤더니 대다수가 취업을 희망하는 내용들이다. 이들의 소원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마음속 깊이 짠한 생각이 밀려온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이 얼마나 힘들고 마음에 부담이 되면 정초에 연까지 만들어 띄우며 마음을 달래며 위안을 삼으려 하는지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나도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딸과 함께 연을 날리러 도심의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변으로 갔다. 유난히도 포근한 날씨인지라 운동기구에 올라 운동하는 사람, 부지런히 걷는 사람, 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 등 모두들 자기 일에 열중하는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딸아이가 자기가 만든 연을 친구와 함께 힘껏 날려 보지만 처음인지라 잘 날지를 않는다. 이리 저리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날리지만 그래도 잘 날지를 않자 나에게 날려보라 가지고 온다. 잘 되었다 싶어 연을 받아 들고 어릴 때 연 날리던 실력을 뽐내 보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등지고 팽팽하게 감긴 얼레의 실타래를 서서히 풀어주면서 연을 힘껏 하늘로 던지니 연이 날기 시작했다. 점점 높이, 그리고 점점 멀리 날기 시작했다. 적당한 바람이 불어서인지 연은 잘 날았고 얼레의 실이 하나도 남지 않게 모두 풀릴 때 까지 멀리까지 연을 날렸다. 손에 잡힌 얼레의 손맛이 좋아 기분도 좋아진다.

  연 줄의 기분 좋은 손맛을 느끼며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딸아이는 인생의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 디뎌야 할 터인데 지금 하늘 높이 나는 연처럼 초년의 사회생활이 아무 어려움 없이 평탄하고 자유롭게 훨훨 잘 날았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이 앞선다.

 

 

  훨훨 나는 연을 딸아이의 손에 건네주자 신기해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무척 재미있게 연을 날린다. 지나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사람들도 도심에서의 연날리기가 신기한지 연 날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연이 힘을 잃고 연줄이 꼬이며 곤두박질치더니 커다란 나무 위 가지에 걸리고 만다. 딸아이가 안타까움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 줄을 모르며 연을 나무위에서 내려 보려고 연줄을 당기며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은 줄이 끊어지고 만다. 무척 재미있는 연날리기였지만 어쩔 수 없이 연을 나무 위에 그대로 두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연을 날리며 마음속으로 원했던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인생의 항로가 바람을 타고 훨훨 나는 연처럼 추락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꾸준히 나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항로가 모두가 바라는 올바른 방향으로만 나간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인생길이 때로는 훨훨 나는 연처럼 평탄할 때도 있지만 강한 바람에 연줄이 꼬이며 나뭇가지에 걸려 꼼짝 못하는 것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고난의 시기도 있다. 하지만 다시 높게 날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꼬인 줄을 하나하나 풀어내면 언젠가는 다시 훨훨 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월간 문학세계 2015년 5월호 (제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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