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사랑하는 만큼

킹스텔라 2015. 7. 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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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만큼

열린세상[932호] 2015년 06월 02일 09:46:59 l 

 이 대 성  수필가


  저녁에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뜬금없이 은행의 계좌번호만 달랑 적혀 있었다. 내일이 무슨 날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일은 5월 18일이고, 그러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오늘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데 합창은 가능하나 제창은 못한다 하며 정부와 정치권이 대립하고 있었다. 해마다 일어나는 소모적인 뉴스다.
  대학 새내기인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사회 이슈나 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중학교 시절부터 투덜거리기도 했다. 또한 중학교의 방과 후 보충수업이 말로는 자율이지만 반강제적이라고 거부했고,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도 입학도 하기 전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졸업반이 돼서는 이런 한국에서 공부하기 싫으니 중국으로 고등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다. 본인의 생각이 워낙 확고해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보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염려와 달리 잘 적응했고 3년의 학업을 마치고 얼마 전 국내 국립대학에 입학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학술동아리 하나와 풍물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고 했다.
  아들은 선배나 동기들에게 인기가 많아 많은 모임에 불려 다녀 매번 갈 때마다 용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또 여 학우들과 저녁 약속을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으니 아들이 굶으면서 사는 걸 원하지 않으시면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아드님 용돈을 더 올려달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들의 이런 성품을 잘 아는 나로서는 오늘 보내온 카톡 내용은 나를 은근히 걱정하게 만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시국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취업과 자신의 앞날만을 걱정하며 낭만 없는 대학생활을 당연시하는 형국이라 나는 이러한 세태가 맘에 들지 않았었다. 나의 바람대로라면 아들이 이런 낭만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심 반겨야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를 못하고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싶어 내심 걱정이 됐다.
왜 하필이면 전통적으로 운동권 학생들이 많은 풍물 동아리에 들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분명 이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도 학창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이 전국으로 번져나갈 때 가두시위를 하고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쫓고 쫓기며 시위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아들에게 짧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데?” 한참을 아내와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아빠 내일이 바로 성년의 날이야. 아빠가 사랑하는 만큼 국민은행 계좌번호  744702-00-223???로…….”

  휴-우!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내심 머쓱한 기분이 들며 한편으로 웃음이 나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오늘 내가 그 꼴이 됐던 것이다.

“아들! 성년이 된 걸 축하해. 벌써 스무 살이 됐네? 이제 성년이 됐으니 앞으로 네 말과 행동에 더 책임을 져야겠네. 그래서 결론은 축하금(용돈) 보내달란 얘기네?”라고 문자를 띄웠다. 그러자 아들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다.
“그냥~ 성년이 됐다고요. 성년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에게 얼마의 축하금을 입금시킨 후 “통장 확인해 봐.”라고 답장을 보냈더니 “멋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라고 답이 왔다.
평소에 아빠라 부르던 녀석이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문자를 보내왔던 것이다. 이제 스스로 성인이 됐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문자로 대화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 밑에서 재롱을 부리며 자랐던 많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느덧 성년이 돼 이렇게 늠름하게 잘 컸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길이 있으며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인생길은 각자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자기 길을 찾아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창조해 가야 한다. 내가 나 다운 사람이 되는 것, 내게 맞는 삶을 스스로 올바르게 개척해 나가는 것이 바로 성인이 되는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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