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폐지 줍는 할머니

킹스텔라 2016. 1. 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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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물건을 포장했던 상자, 읽고 난 신문이나 잡지, 음료수 캔이나 병을 사무실 한쪽에 수북이 쌓아 두는 습관이 있다. 어떤 때는 길을 가다가도 빈 병이나 알루미늄 캔을 주워 올 때도 있다. 물론 지저분하여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오늘도 수명을 다해 폐지로 변한 상품 포장 상자를 뜯어서 버리지 않고 한곳에 모으고 있다. 괜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냥 버리기가 아깝고 이것을 모아두면 무척이나 좋아하며 반가워하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벌써 몇 주째 기다리는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작년에 사무실을 이전했다.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이삿짐을 싸왔던 골판지 상자와 기타 쓰지 못해 버리는 재활용 가능한 물건이 많이 나왔기에 이것을 현관 입구 노상에 대충 쌓아 두었다. 지나던 한 할머니께서 가져가도 되느냐고 하시기에 가져가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팔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나이에 가냘픈 몸매와 쭈글쭈글한 얼굴과 손등의 주름은 지나간 세월의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파지를 정리하는 느리고 느린 손동작은 배터리가 다 소모되어가는 장난감 로봇같이 보였다. 힘든 몸동작과 손놀림으로 주섬주섬 파지를 주워 가지런히 정리하여 다 낡은 유모차에 실었다.

   이후 할머니는 가끔 들러 문을 빠끔히 열고 파지가 있는지 살피면서 파지를 가져가자살율,곤 했다. 나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 힘들게 파지를 모아 생활을 하시는 것을 알고 할머니를 위해 파지를 버리지 않고 모으다 보니 새로운 취미 아닌 취미생활처럼 파지를 모으게 되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은 왕래가 별로 없다고 한다. 특별한 수입이 없기에 외롭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려면 고령에 몸은 병들고 힘이 들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예전에 가끔 일이 있어 서울에 갈 때면 지하철에서 배낭을 등에 지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종종 보았었는데 지금은 눈에 잘 띄지를 않는다. 스마트폰이 신문을 대체하여 신문 구독이 줄었고, 지금은 폐지를 팔아도 폐지 값이 내려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014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노인 인구 절반에 달하는 49.6%OECD 평균 12.6%4배에 달하는 수치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생활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취약계층이라 볼 수 있는 노인들의 삶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70세 이상의 노인 10만 명당 자살률은 116.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간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이 자살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최대 20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폐지를 팔아 그나마 생계를 이어갔는데 이것도 유가 하락과 함께 폐지를 비롯한 재활용품 가격이 바닥을 치는 어려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으니 그들의 생활도 더 팍팍해져 가고 있다. 나의 미래, 우리들의 미래가 이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고통이지만 좀 더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옛날 어느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오의 태양은 이미 지는 태양이요, 태어난 사람은 이미 죽어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어느 연령층에 있던 마음과 육신의 건강과 삶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생활 방법을 배우며 노년을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도 할머니를 기다려 보지만 할머니의 반가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추운 겨울날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걱정이 앞선다. 진작 할머니의 집을 알아두고 방문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를 보았지만, 노인들은 건강이 아주 쇠약하여 거동을 못 하시거나 세상을 뜨신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오늘도 마음이 무겁다. 제발 그러한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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