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가련한 말티즈

킹스텔라 2024. 6. 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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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홀로 처가에 다녀왔다.

매주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혼자 사시는 장모님을 뵙기 위해 처가를 방문하곤 했다.

오늘 방문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은 하얀색 말티즈를 보기 위해서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혼자 새끼들을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집을 지키는 말티즈

 

  장모님께서는 처남댁에 일이 있어 오랫동안 집을 비우셨다.

앞집에 사시는 할머니께 먹이 주는 것을 잘 부탁하고 가셨다고 하지만 젖먹이 말티즈가 잘 있는지 몹시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이 말티즈는 집에서 딸이 키우던 것인데 오래전부터 키워 왔던 고양이와 함께 키우자니 힘에 부쳐 시골에 계시는 장모님께 키우도록 부탁했었다.

 

  장모님은 워낙 정이 많으신 분이지만 천식 때문에 집 안에서는 키우지 못하고 현관문 밖에 집을 지어 온갖 정성과 사랑을 다해 키우셨다. 홀로 있다 보니 심심함도 덜 수 있고 자식처럼 정을 주며 돌봐주니 말티즈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장모님 곁을 지켰다. 집에 있는 맛난 것은 이 녀석의 차지였고 빵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사료보다 빵을 더 좋아해 수시로 빵을 사다 주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에 내가 차를 몰고 대문을 들어서기만 해도 차 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멀리서부터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었지만, 오늘은 보이질 않았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처마 밑 마당 한쪽 구석에 가로누워 사시나무 떨듯 몸을 발발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움을 표하며 흔들어 대던 꼬리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날렵하게 움직이던 몸체는 한여름 장마에 녹아 버린 배추포기 같았고, 슬퍼 보이는 눈동자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애처로이 쳐다보기만 했다.

새끼 강아지가 곤히 잠들어 있다.

 

  정성껏 만들어 준 개집에는 다섯 마리의 새끼들이 제 어미가 아픈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엉겨 곤히 잠자고 있었다.

아빠 개가 검은색의 다른 종이라 검둥이, 흰둥이, 얼룩이 등 색깔도 다양하다. 곧바로 어미 개에게 다가가 몸을 쓰다듬으며 일으켜 세워 보았지만, 양다리로 자기 몸을 지탱하지를 못하고 온몸을 떨며 차가운 마당의 보도블록 위에 힘없이 푹 쓰러진다.

눈동자는 힘이 풀려 있고 눈꺼풀은 눈동자를 거의 다 덮고 있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아 보여 마침 가져온 빵을 먹기 좋게 뜯어서 입을 벌려 물려주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빵도 먹지 못하고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뜨린다.

 

예전에 누군가 개가 아플 때 뼈다귀해장국을 먹였더니 그것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말이 생각나 급하게 차를 몰고 해장국집을 찾아 달렸다. 식당을 찾아 뼈다귀해장국 한 그릇과 어린 새끼들을 위해 우유와 갓난아기 젖병을 사 왔다.

 

  살점이 가장 많이 붙어 있는 돼지 등뼈를 하나 골라내어 살점을 떼어 입에 물려주었지만 입도 벌리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러다 이제 곧 죽겠구나 싶어 억지로 입을 벌리고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어 주었지만, 고개를 흔들며 바로 뱉어내고 만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새끼를 먹이기 위해 방금 사 온 우유를 입을 벌리고 숟갈로 떠먹였다. 반은 흘러내리면서도 조금은 목으로 넘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한 컵 정도의 우유를 먹일 수 있었다.

 

  다음은 굶고 있는 강아지 차례인데 아기 젖병에 우유를 가득 채워 입에 물려 줬지만, 젖병 꼭지가 너무 큰지 빨지를 못한다. 할 수 없이 젖병 뚜껑에 우유를 조금 쏟아 강아지 입에 갖다 대니 조금씩 핥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한 마리 한 마리씩 쪼그리고 앉아서 우유를 먹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시 어미 개에게도 우유를 더 먹이고 쓰다듬어주고 한참 동안을 더 그렇게 정성을 쏟았다.

 

  거의 한나절을 어미 말티즈와 강아지에게 정성을 쏟았더니 죽어가던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며 조금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갓난아기 적 딸에게 젖병을 물려 보고 이처럼 지극 정성을 다해 젖병을 물리고 우유를 먹인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개에게…….

 

장모님께 전화를 했다.

장모님! 집에 있는 꼬질이가 다 죽어 가요.”

아니? 왜 그려.”

놀란 장모님의 당황한 목소리가 수화기 멀리서 들려왔다.

빨리 올라오셔야 하겠어요.”

다음 날, 장모님께서는 KTX를 타고 부산에서 바로 올라오셨다.

겨우 살아난 가련한 말티즈

 

  어린아이들은 엄마와 대화하며,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 주는 밥을 먹으며 함께 뛰어놀며, 엄마의 사랑과 감정을 먹고 자라난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이 또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까 저절로 자라고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라나고 소통하는 것은 같은 이치인가 보다.

 

  온갖 사랑과 정성을 주던 주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자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았던 어미 개가 갓 낳은 새끼를 보호해야만 하는 두려움과 엄청난 스트레스에 병이 들었던 모양이다.

 

가련한 말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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