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아멜리아 카렌

킹스텔라 2014. 7. 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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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고대하고 꿈속에 그리며 가고 싶었던 고향일까?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려보며 가고 싶어 하는 곳이 그리운 고향이다. 그곳에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더욱 그러하리라. 가까이 고향이 있다면 심적으로나마 위안이 되고 외로움도 덜 할 텐데 안타깝게도 떠나온 고향이 이역만리에 있어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형편이라면 그 그리움의 크기가 어떠할까.

 

  몇 년 전 한 결혼이주여성을 안전하게 안내하고 출국 수속을 도와주기 위해 인천공항에 다녀온 적이 있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필리핀의 친정집에 다니러 가는 길이었다.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먼 길을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언어소통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문화차이,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과 경제문제라 하는데 이 여성은 특히 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었다.

 

  「아멜리아 카렌」, 필리핀 현지에서 지인의 소개로 단 두 번의 만남 끝에 열네 살 위의 한국 남자에 흠뻑 반해 일주일 만에 결혼하여 한국으로 들어와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직장 생활에서도 인정받고 가정에서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흠 잡을 데 없는 다정다감한 남편이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잠깐, 남편은 결혼 3년 만에 찾아온 우울증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때 배 안에는 3개월 된 둘째가 자라고 있었다. 타국에 와 혈혈단신 남편만 의지하고 살던 카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표현이 이럴 때 필요하리라.

  남편을 잃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극진히 모시며 함께 생활하던 시어머니는 앞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들 테니 태중에 있는 아이를 지우라고 모질게 강요하였다. 이런 시어머니가 너무 원망스럽고 무서웠지만 카렌은 그토록 의지하며 사랑하던 다정다감한 남편의 흔적을 지울 수 없어 세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오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어머니도 마흔 한 살에 혼자되어 오남매를 홀로 키웠던 터라 며느리의 앞길을 생각해 딱한 마음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던 것이다.

  카렌은 집을 나왔으나 갈 데가 없어 이주여성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다가 둘째 딸을 출산한 후 시어머니가 홀로 사는 시골의 시댁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어린 남매와 몸이 불편하고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국가에서 지원되는 약간의 생활 보조금으로 네 가족이 생활을 하였다.

정말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실감이 난다.

 

   친정에 가는 일을 돕기 위해 그녀의 허름한 시골집을 방문했을 때 주방이 딸린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생활하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가 매일 이어지는 가운데 그날도 눈이 내리며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였지만 주방은 난방이 전혀 되지를 않아 냉기가 온몸을 감싸 돌았고, 조그만 방안에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어지럽게 깔려있고 약간의 온기가 있을 뿐이었다. 다섯 살 된 아들과 두 살 된 딸이 함께 생활하는 집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마다않고 이국땅에 홀로 와서 어린 남매와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했다.

 

  카렌은 결혼한 지 6년이 되었지만 가정 형편상 아직 필리핀의 친정집에 단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교회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친정집에 다녀오게 되어 오늘 출국하게 된 것이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 같이 가지 못하지만 6년 만에 친정 부모님을 만나고,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던 외손자, 외손녀들의 재롱을 보여드리러 가는 길이다. 남편의 손을 잡고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아려왔다. 자그마한 체구에 고생이 묻어나는 거무스레한 얼굴, 향수에 젖은 검은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욱 초롱초롱하고 행복해 보였다. 모처럼 고향 가는 길이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한가 보다.

 

  사실 내심 걱정이 되었었다. 친정집에 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했던 남편을 잃었고 연로한 시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피붙이 하나 없는 이국땅으로 다시 돌아올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렌은 두 남매를 데리고 약속한 한 달 후에 한국의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에게 줄 알록달록한 해먹을 사 가지고 와 고맙다고 선물까지 하면서……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했던가? 오랜만에 카렌과 전화통화를 했다. 발음이 약간 서툰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카렌씨! 나 누군지 알아요?”

“네. 알아요. 안녕하세요?”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 태연이하고 보경이도 잘 있고요?”

“네. 잘 있어요. 태연이는 학교에서 일등 했어요. 아빠 닮았나 봐요.”

무척 오랜만의 통화이지만 잘 지내고 있고 무척 반갑다는 느낌이 가슴속 깊이 느껴져 온다.

 

“카렌씨! 보경이 때문에 일을 못했었는데 요즘은 일 하고 있어요?”

“네. 요즘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요.”

“시어머니 건강은요. 거동은 불편하지 않으세요?”

“네. 조금 불편한데 그냥그냥 괜찮아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카렌의 목소리가 예전과 달리 활기차고 힘이 있다. 카렌은 시골의 한 지방자치단체의 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카페나무(Cafe Namoo)라는 다문화 카페에서 다문화 여성 및 이주 노동자들에게 쉬어갈 공간을 제공하며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인생의 삶이 늘 좋을 수만은 없고 구름 끼고 거센 돌풍이 몰아치는 날도 있다. 외로움 때문에 또는 삶이 힘들어 죽고 싶도록 힘들 때도 있고 서러움에 한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도전해 나가면 돌풍이 몰아쳤던 과거의 고난이 오히려 미래의 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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