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나의 글쓰기

제주에 가던 날

킹스텔라 2015. 5. 20. 05:51
728x90

  오늘은 아침부터 괜히 분주하다. 분주하다 못해 가슴이 설렌다.

딸아이가 대학 졸업 후 그토록 노력하며 잠 못 이루며 고대하던 취업에 성공해 근무하는 제주에 가는 날이다. 딸에게 줄 몇 가지 물건을 가방에 챙기고 출근을 했다. 낮 시간은 근무를 하기로 하고 저녁 비행기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금년 새해 첫 날, 졸업반인 대학생 딸아이가 연날리기를 한다면서 친구와 커다란 연을 만들었다. 자세히 보니 연 위에는 새해에 바라는 희망이 또박또박 펜으로 정성스럽게 적혀 있는데 자기의 소원만 적은 것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의 각자 소원을 모아서 연 위에 함께 적었다.

  무슨 내용인가 봤더니 모두가 취업을 희망하는 내용들이었다. 이들의 소원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마음속 깊이 짠한 생각이 밀려온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이 얼마나 힘들고 마음에 부담이 되었으면 정초에 연까지 만들어 띄우며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삼으려 했는지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얼마 전, 딸은 취업을 위해 이곳저곳에 원서를 냈다. 쉽지 않은 서류 심사를 통과해 최종 면접까지 보았지만 몇 번의 고배를 마셨다. 취업 지원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이 무척이나 어렵고, 특히 여성으로서 취업이 더 어렵다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 것을 아는 순간 그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만이 가슴 한편에 남았었다.

  딸은 친한 친구 세 명과 함께 매주 각자의 집을 돌아가면서 취업을 위한 스터디 모임을 했었다. 서로를 위로하며 각자의 내공을 쌓으며 취업에 성공하는 날을 고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말 고달프고 어려운 시간, 때로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딸이 힘들어 할까 봐 취업에 관한 얘기는 쉽게 꺼내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을 묵묵히 잘 참고 견디어 냈다. 그런 딸이 취업에 성공하여 멀리 제주도에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쁨과 희망이 열린 것이다.

  간간히 전화를 하면 직장 분위기도 좋고, 맡은 업무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본인 적성에 맡는다며 좋아한다. 주말이면 바닷가나 관광지, 오름을 오르며 유유자적하면서 여행도 하고 퇴근 후에는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며 여가를 보낸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던 딸이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다니 내심 걱정이 많았었는데 잘 적응하고 있으니 이제 마음이 놓이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공항에는 평일 저녁인데도 많은 탑승객과 환송객들이 북적인다. 항공권을 발권하고 제주행 비행기 좌석에 몸을 실으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제주도에 거주할 집을 구하기 위해 이틀 동안이나 돌아다녔지만 출근 전날까지 집을 못 구해 딸과 함께 고생했던 일, 오후가 되어 겨우 오피스텔을 구해 급히 계약하고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구하려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던 일, 아침에 첫 출근하는 딸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가까스로 탔던 일, 그동안 너무 지치고 잠도 못자고 신경을 많이 썼는지 비행기에서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에 실려가 중환자실과 병실에서 한 달이나 입원해서 치료받던 일 등 그동안 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화를 보듯이 스쳐 지나갔다.

  

  자식은 부모와 평생을 함께할 수 없는 것을 잘 안다. 품안에서 고이 키워 왔지만 이제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난다 생각하니 마음속이 허전하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때로는 잔소리하며 한 집에서 생활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생활이 빛바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머지않아 결혼도 하고 독립된 가정을 꾸려 부모 곁을 영영 떠나게 될 것이란 생각에 가슴 한구석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첫 단계인 것 같다.

 

728x90

'행복한 세상 > 나의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금연의 날을 맞이하며.  (0) 2015.05.31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이대성씨 수상  (0) 2015.05.23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0) 2015.02.16
염원  (0) 2014.12.04
결혼 청첩장  (0) 201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