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뉴시스】연종영 기자 = "정장입은 사람만 봐도 겁이 덜컥 나요"
충북도청 주변에서 음식점을 경영했던 이모씨(53·여)는 일부 공무원들의 '거지근성'에 시달리다 한 때 죽음까지 생각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30일 이씨가 취재진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이씨가 청주시 문화동 도청 앞에서 음식점을 연 것은 1998년이다. 조리솜씨도 좋고 몸에 밴 친절 덕분에 개업 초기 이씨는 주변 업주들이 시샘할만큼 '잘 나가는' 사장이었다.
하지만 장사가 잘되는 것에 비례해 예상치 못했던 고민도 그만큼 커졌다. 몇 달 사이에 '거래'를 튼 도청 실과가 20∼30곳으로 늘었고 외상장부도 그 수만큼 불었다.
문제는 매달 외상값을 갚을 줄 알았던 도청이 차일피일 결제일을 미루면서 시작됐다. 실과별로 수백만원씩 외상값이 불어났지만, 결제되는 금액은 매월 20만∼3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담배를 사오도록 시킨 뒤 소속 실과 외상장부에 밥을 먹은 것처럼 기록해놓는 직원도 생겼고, 20만원대에 이르는 가족회식을 해놓고도 실과 외상장부에 직원회식을 한 것처럼 써놓는 고위간부도 있었다.
3000∼4000원짜리 밥 한끼를 먹고 외상을 다는 직원들도 부지기수였다. 불편부당한 외상행위에 항의하고 싶었지만 돌아올 불이익을 걱정한 이 씨는 참고 또 참았다.
이 씨는 "가족회식을 자주해 천만원(추정)에 달하는 외상을 졌던 간부는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퇴직한 뒤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매달 한 차례씩 정확하게 결제를 해준 곳은 20∼30개 실과 중 예산과(지금의 예산담당관실)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개점 이듬해 외상 규모가 1억원대에 이르자 이 씨는 도청을 찾아가 결제해달라는 하소연을 몇 차례 했다. 하지만 몇몇 실과 서무담당자들은 "부서 공통경비로 해결할 금액을 이미 넘었다. 조금씩 매달 갚아주겠다"며 외면했고, 일부 직원은 "그 정도 외상은 기본 아니냐"면서 오히려 면박을 주기도 했다.
자금 회전이 안되자 이 씨는 친척과 지인들에게 손을 벌렸다. '언젠가는 갚아주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외상은 계속해서 불기만 했고, 그만큼 빌린 돈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개업 3년째 되던 해. 한계점에 도달한 이 씨는 실과를 돌며 애걸했지만 "서무 담당자가 바뀌었다. 내 일이 아니다. 상사채권 소멸시효가 몇년인지 아느냐. 장부가 있어도 돈 못받는다"는 등의 대답만 돌아왔다.
낙심한 이 씨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졌고, 자살을 기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던 그를 붙잡고 통곡했던 것은 당시 고교 1학년이었던 그의 딸이었다.
그는 "도청 옥상에 올라가 외상장부를 품고 투신하는 상상도 했었다"며 눈물을 떨궜다.
' 어차피 받지 못할 돈이고 공무원들이 외상을 해결할 의지도 없다고 본다면, 차라리 접는 게 어떠냐'는 지인들의 제의가 이어졌고, 결국 그는 2001년에 가게 문을 닫았다.
가게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인들의 빚 독촉이 시작됐고, 이 씨는 하릴없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와 전답을 팔아 빚 2억원을 청산했다.
그 후 수년 동안 칩거하다 얼마전 도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시내에서 조그만 식당을 연 이 씨는 출입구에 '도청직원 절대사절, 안받습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안내문을 내걸었다.
이 씨는 "나처럼 외상에 맞아 고통받는 도청주변 식당업주들이 지금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jy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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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도청 공무원 사절”…억대 외상에 자살기도 | ||
기사등록 일시 : [2011-11-30 11:1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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