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어머니의 시

흰 눈

킹스텔라 2024. 1. 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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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이 월 순

 

눈이 내리네

창밖에 흰눈이 내리네.

 

내 어릴 적 눈 내리던 날엔

강아지 몰고 동구밖에 나가

얼마나 뛰놀며 좋아했던가!

 

어머지는 말씀하셨죠

'눈은 강아지 버선이라' 고

그래서 그렇게 꼬리치며

좋아했는지!

 

어느 날 밤 자고 난 새 아침

문 열고 나와 보니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였어요.

깊은 마당에 쌓인 눈이

지붕 처마에 다가왔어요.

 

어머나! 우리 엄마!

'아침 밥할 물 없다' 셨는데

 

공동 우물가는 논둑길 보이지 않고

바가지로 눈 퍼다 가마솥에 붓는 우리 엄마

아무리 퍼다 붜도

불 때 보면 시원찮고

 

또다시 퍼다 붓고 또다시 불 때 보고

그 물에 밥하고 그 물에 세수하고

이 일을 지켜보며

나는 왜 그리 재미있는지!

 

지금 창밖에 내리는 저 흰눈

이렇게 할 수 있어?

 

- 이월순 동시집 <바보 같은 암소> 44페이지 -

 

 

이월순 (시인, 수필가, 1937. 11. - 2021.7.)

 

- 1997년 '풀부채 향기' (시집)

- 2000년 '내 손톱에 봉숭아 물' (시집, 삶과 꿈)

- 2006년 '바보 같은 암소' (동시집, 아동문예)

- 2009년 '시가 있는 수필집 질그릇' (수필, 수필과 비평사)

- 2013년 '할머니의 귀여운 젖통' (시집, 수필과 비평사)

- 2016년 '왜 나는 그를 사랑하나' (신앙시집, 대한출판)

- 2020년 '여든네 번째 봄' (시집, 인간과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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