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이 월 순
눈이 내리네
창밖에 흰눈이 내리네.
내 어릴 적 눈 내리던 날엔
강아지 몰고 동구밖에 나가
얼마나 뛰놀며 좋아했던가!
어머지는 말씀하셨죠
'눈은 강아지 버선이라' 고
그래서 그렇게 꼬리치며
좋아했는지!
어느 날 밤 자고 난 새 아침
문 열고 나와 보니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였어요.
깊은 마당에 쌓인 눈이
지붕 처마에 다가왔어요.
어머나! 우리 엄마!
'아침 밥할 물 없다' 셨는데
공동 우물가는 논둑길 보이지 않고
바가지로 눈 퍼다 가마솥에 붓는 우리 엄마
아무리 퍼다 붜도
불 때 보면 시원찮고
또다시 퍼다 붓고 또다시 불 때 보고
그 물에 밥하고 그 물에 세수하고
이 일을 지켜보며
나는 왜 그리 재미있는지!
지금 창밖에 내리는 저 흰눈
이렇게 할 수 있어?
- 이월순 동시집 <바보 같은 암소> 44페이지 -
이월순 (시인, 수필가, 1937. 11. - 2021.7.)
- 1997년 '풀부채 향기' (시집)
- 2000년 '내 손톱에 봉숭아 물' (시집, 삶과 꿈)
- 2006년 '바보 같은 암소' (동시집, 아동문예)
- 2009년 '시가 있는 수필집 질그릇' (수필, 수필과 비평사)
- 2013년 '할머니의 귀여운 젖통' (시집, 수필과 비평사)
- 2016년 '왜 나는 그를 사랑하나' (신앙시집, 대한출판)
- 2020년 '여든네 번째 봄' (시집, 인간과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