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세상읽기

건강보험 병들게 하는 ‘5가지 毒

킹스텔라 2011. 1. 1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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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문가들이 본 건보 재정적자 원인

ㆍ▷잘못된 의료수가 ▷비급여 급증 ▷약값 거품 ▷영리몰두 병원 ▷민간보험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보장성이 줄면 병원비 지출이 늘고, 민간보험 의존이 갈수록 깊어져 가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병원 치료를 마음 편히 받으려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원인을 찾아 해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현행 의료수가 체제와 약값 거품 등을 ‘건강보험을 위협하는 5가지 원인’으로 꼽고 있다.

◇ 과잉진료 부추기는 의료수가 =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2009년 16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8회(2007년 기준)의 2배를 훨씬 넘는다. 입원일수는 2007년 13.6일로 OECD 평균 7.2일의 2배에 가깝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행위별 수가제’를 꼽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행위별로 수가를 매기는 것이다. 진료횟수가 늘어날수록 병원이나 의사수입이 증가하도록 돼 있어 과잉진료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반면 유럽 등 의료선진국은 미리 각 의료기관에 재정지출 한도를 정해놓고 건강보험 급여비를 지불하는 포괄수가제를 택하고 있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감기에 걸렸는데도 매일 병원을 찾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는 것”이라며 “행위별 수가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급증 =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7년 64.6%까지 올라갔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8년 62.2%로 하락했고 올해는 5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마다 암 등 건강보험 급여항목을 확대하고 있지만 고가 신약과 선택 진료비, 상급 병실료와 간병비 등 ‘비급여’ 항목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 선택진료비(특진비)의 경우 2007년 7959억원에서 2009년 9961억원으로 늘었고 2010년에는 1조1143억원, 2011년에는 1조2466억원으로 해마다 1000억원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비급여의 경우 병원에서 보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갑상선과 전립선 수술에 쓰이는 미국산 다빈치 로봇수술 기계의 경우 아시아 지역에 총 32대가 있는데 이 중 29대가 국내에 있다”며 “고가 수술장비 등에 대한 규제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 꺼지지 않는 약값 거품 = 2009년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 39조원 중 약제비 비중은 29.6%(11조4000억원)였다. OECD국가 평균은 17.6%로 우리나라는 이보다 1.7배 높다.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약제비 증가율 역시 13.5%로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약제비 비중을 낮추기 위해 보험등재 약품목록을 정비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7월 시간과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목록 정비를 포기하는 대신 ‘약값 20% 일괄 인하’ 방안을 내놨다. 동일 성분 의약품 최고가의 80% 이상이면 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80% 수준으로 가격을 인하하면 급여를 유지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약 등 고가약 위주 처방관행이 계속되는 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강아라 사무국장은 “특허의약품에 예외조항을 둔 새 정부안은 약값 거품을 없애지 못하고 건보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영리에 몰두하는 병원 = 미국과 일본, 유럽 각국은 지역별로 고가 의료장비 도입 및 병상 총량을 관리하고 있다.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부추겨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병원 증설이나 최신 장비, 병상허가와 관련한 제도가 전무하다. 세계적으로 병상 수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인구당 병상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선 2000년대 이후에도 양적 팽창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이후 전문의약품과 의료기관 방송광고 허용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의약품을 영리 목적으로 광고하거나 병원을 상품화할 경우 의료·의약품 남용이 우려되고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은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중환자실과 응급실은 줄이면서 고가 장비를 들여놓는 데 급급한 병원의 영리 추구 양상을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서민가계 뒤흔드는 민간보험 =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비가 늘수록 환자들은 민간보험에 기댈 수밖에 없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민간보험시장은 총 110조원(생명보험 73조5000억원+손해보험 37조5000억원)으로 매년 10% 안팎의 성장세를 감안할 때 2011년에는 1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비교할 때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과잉상태라는 시각이 많다. 민간보험을 건강보험 보충형으로 택한 유럽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0.4% 미만이지만 한국은 이미 1%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김종명 인도주의 의사실천협의회 정책실장은 “민간보험사가 자료공개를 꺼리고 있는데, 연금 등 특약까지 더한다면 민간보험료 부담은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민간보험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가입 여부와 보장수준이 달라 의료서비스의 빈익빈부익부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건보 작년 1조3000억 적자… 전년의 400배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 수입은 33조6000억원, 지출은 34조9000억원으로 1조3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 적자 규모(32억원)에 비해 무려 40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매달 1000억원씩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건보공단의 누적 적립금 역시 2009년 2조2586억원에서 2010년에는 1조원 이하로 떨어졌다. 올해는 5000억원가량의 당기적자를 보고 2012년 말에는 전체 적립금이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가 회복되면 건보 재정 수입이 늘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은 채 사실상 손놓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 건보공단 적자는 예상됐던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건강보험료를 동결했고 경기침체로 국민소득도 늘지 않아 건보재정 수입이 제자리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출은 늘었다. 건강보험이 병원 등에 지불한 보험급여비는 2007년 14.3%, 2009년 13.8%, 2010년에는 11.7%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 폐지 등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이명박 정부 들어 건강보험 보장성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매년 실시되던 보장률 실태조사는 중단됐다”면서 “정부와 건보공단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건보 하나로 병원비 해결하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재정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복지’가 화두가 될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와 야당이 경쟁적으로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 공식 출범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시민회의)는 현 건강보험 재정에 국민들이 12조원을 보태 병원 진료비의 90% 이상을 건강보험으로 보장받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국민 1인당 1만1000원(가구당 2만8000원)의 보험료를 더 내면 선택진료비, 초음파, MRI 등 비급여 본인부담은 물론 간병서비스와 노인 틀니까지 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회의가 그리는 그림은 이렇다. 건보 가입자가 6조2000억원을 추가 부담하고, 기업주(직장보험)가 3조6000억원을 보태며 국고지원금(보험료의 20%) 2조7000억원을 더할 경우 12조5000억원의 추가 재원이 생기는데, 이 재원을 통해 건보의 보장성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국,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처럼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를 거의 전액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회의가 보험료 인상을 전제로 하는 것과 달리 정부의 국고 지원을 더 늘리자는 시각도 있다. 인구가 고령화하고 만성질환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험료만 계속 올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박사는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보험료에만 의존해서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이 없다. 노인 의료비의 50%를 국가가 부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 부담을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의료 민영화 추진 반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상위 1000대 기업(연 매출 200억원)에 한해 건강보험 연대부담금을 0.2%씩 거두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 기업은 연 매출액의 0.1%씩 2차례 건강보험료를 지원하고 있다.



출처 :  경향신문-기획 (2011.1.11 화)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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